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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정보/한국사

다가오는 제 35주년 6월 민주항쟁 기념일

by 웃음공주 2022.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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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제 35주년 6월 민주항쟁 기념일

 

 

이제 다음 주면 6월 민주항쟁 제35주년이 됩니다. 같이 한걸음이라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있었기에 우리들이 지금 이렇게 포스팅도 하며 마음껏 자유를 누리면서 지낼 수 있습니다. 오늘은 6월 민주항쟁 이야기를 해 봅니다.

 







 

 

 

■ 6월 민주항쟁 원인

: 6월 민주 항쟁 원인은 1987년 1월 바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시작하여, 전두환 4.13 호헌 조치, 시위 중 최루탄에 사망한 이한열 열사가 도화선이 되어 6월 10일 반독재 민주화 시위가 전국적으로 발생한 민주화운동으로 6월 민주항쟁,6.10민주항쟁, 6월 민주화 운동등으로 불리고도 있습니다.

 

 

 6월 민주항쟁 과정

▶ 사회적 상황

: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 사망하고, 새로 취임한 최규화 대통령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였지만, 전두환 등 신군부가 군사 반란을 일으켜 군부 내 실권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이에 반대한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고, 이에 신군부는 무력으로 유혈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의 희생이 발생하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발생됩니다. 이후 전두환은 통일 주체 국민회의(1972년 유신 헌법에 의해 설립된 기관으로, 국민이 직접선거로 선출된 2천 명 이상 5천 명 이하의 대의원으로 구성 )에 의해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으로 추대되어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1.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발생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 박종철 열사는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주화 추진위원회 지도의원으로 수배받고 있던 박종운을 잡기 위해 1987년 1월 13일 자정 경 하숙집에서 지금의 경창철에 속하는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에게 연행됩니다.

박종철 열사가 자백하지 않자, 경찰은 잔혹한 폭행 전기 고문 등 가하게 되었고 , 끝내 박종철 열사는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산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정부는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사망원인으로 거짓 발표합니다.

 

박종철 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2월 7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 추도식 및 시위가, 3월 3일에는 박종철 군 49재와 국민 대행진 및 시위가 열렸습니다. 이후 4월 2일에는 서울 대학교 학생들의 학부모 130여 명이 건국대학교 사태 등 시국과 관련하여 구속 학생의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철야 농성을 벌입니다.

 

2. 전두환 4.13 호헌 조치

: 1987년 4월 13일 전두환은 "임기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현행 헌법에 따라 내년 2월 25일 본인 임기 만료와 더불어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할 것을 천명하는" 내용 등이 담긴 대통령 특별담화를 발표해 개헌 논의를 유보하겠다고 밝히고, 1987년 내에 공정한 선거 관리를 통해 경선 분위기가 보장되는 가운데 차질 없는 선거 실시와, 민정당 후임인 대통령 후보는 조속한 시일 안에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물 가운데서 당헌 절차와 민주 방식에 따라 전당 대회에서 선출되도록 하겠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존 헌법 내용을 유지한 채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 호헌 조치"로 국민들의 반발을 가져와 4월 14일 고 김수환 추기경님 등 각계 인사들이 호헌 조치 비판하는 시국 성명을 발표하게 됩니다.

 

 

3. 시위 도중 경찰 최루탄에 이한열 열사 사망

: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광주항쟁 7주면 미사에서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김승훈 신부께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이 은폐, 축소되었다고 밝히자,국민들의 분노는 더욱더 커져갔습니다.

6월 10일 박종철 열사 고문 살인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 대회를 전국적으로 개최합니다.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기 하루 전, 연세대 내에서 시위를 하던 이한열 군이 머리에 최루탄 파편을 맞고 사경을 헤매게 되자, 연세대생들은 살인적 최루탄 난사에 대한 범연세인 규탄대회를 벌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최루탄 발사 규탄 시위도 확산되고 18일 전국의 14개 도시에서 10만여 명이 시위에 참가합니다. 이 시위는 6월 29일 정부가 6.29 선언을 발표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 6.29 선언

: 1987년 6월 29일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민주정의당(민정당) 대표 위원이 당시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여 발표한 특별 선언을 하게 됩니다. 통일민주당 김대중 고문과,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 대통령 후보 단일화가 무산되고, 김현희 항공기 폭파사건 발생으로 북풍이 일자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게 됩니다.

 

■ 6월 민주항쟁 결과& 의의

:군사 독재 시대가 드디어 끝나고, 6.29 선언을 통해서 대한민국 최초로 대통령을 국민이 투표를 통해 직접 뽑는 직선제가 실시되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인데, 국민을 대표하는 대리인 선출하다 보니 당리당략, 정치적 목적 영향을 받아왔으나, 대한민국 최초로 국민이 직접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뽑아 정권을 교체를 이뤘습니다.

1987년 이때 헌법이 대통령을 뽑는 방식을 직선제로 개정되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민주 의식이 발전하게 됨으로써 더 이상 대한민국은 군부 독재나 장기 독재는 불가능하게 된 나라가 되었습니다.

6월 민주 항쟁 이후 그동안 정치 활동을 할 수없었던 정치인들이 풀러나 고, 언론의 자유도 확대되었습니다.

 

■ 민주주의란?

:  학창 시절 교과서에 민주주의란 모든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갖고, 그 권리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행사하는 정치를 라고 배웠습니다. 여기에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고, 기본적 인권, 종교, 정치 선택 등의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 법치주의를 기본 원리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유와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고, 국민 모두가 평등하게 법의 보호를 받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정치를 민주 정치라고 합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미국, 영국 등은 몇 백 년간에 걸쳐 민주주를 발전시켜왔지만 ,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가 들어온 지 70년도 정도밖에 안되어 앞으로 계속 발전 시커 나가 할 큰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6월민주항쟁
이미지출처:6월항쟁 공식홈페이지

 

※  35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 전야제   

날짜 : 6월 9일(목) 오후 6시 30분

주소 :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4-1  인사아트홀(인사아트플라자)

출연진: 하림, 두 번째 달, 오단해

참석 문의 : 031-361-9578~9

 

 

 

※ 6.10 민주 항쟁 주간 행사 보러 가기 ※

 

6월항쟁 공식홈페이지

6월항쟁 33주년 웹사이트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나눠주세요. 총100분을 선정해 푸짐한 선물을 드립니다.

www.610.or.kr

 

 

6월은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신 분들을 기억하고, 애국심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호국 보훈의 달입니다.

학창시절 6월이면 호국 보훈의 달로 미술대회, 글짖기 대회등 했던 기억 남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갖고 지내는 시작으로 6월 6일 현충일에 태극기 계양하는 일부터 시작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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